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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 왕자 - 전라북도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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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 왕자 - 전라북도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은이), 심재홍 (옮긴이) 
  • 출판사이팝 
  • 출판일2021-11-22 
보유 2,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8, 누적예약 1

책소개

“그 많은 책도 쌀 한 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합니다.”
도서출판 이팝은 포항에 소재한 독립출판사로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한 어린왕자 <애린 왕자>의 저자 최현애가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명의 이팝은 이팝나무에서 착안했고 5월에 만개하는 이팝꽃은 쌀 모양을 닮아 밥풀꽃이라고도 불린다. 이팝나무는 풍작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보호수이다, 쌀은 뼈와 살을 만드는 에너지이자 노동, 생존 그 자체인 상징적 재료다. 쌀 문화권은 농사를 기반으로 공동체를 중시하는데 도서출판 이팝은 과거의 전통적 가치를 현재의 지역 소재와 엮어 다양한 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평범한 일상도 예술이 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1) 책 소개
이 책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ry)의 소설 어린 왕자를 필자의 모어인 전라북도 방언으로 번역한 책이다. 프랑스어 원문을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전라북도 방언으로 번역되도록 고민하여 번역하였다.

2) 출간 계기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된 어린 왕자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그러면서도 수집만 할 뿐, 직접 번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 어린 왕자가 경상도 방언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필자의 고향 말인 전라북도 방언으로도 번역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작업을 시작하였다. 반도 완성하지 못한 원고를 가지고 어린 왕자를 경상도 방언으로 번역한 바 있는 도서출판 이팝의 최현애 사장님께 연락했는데 너무나 흔쾌히 작업을 맡아주면 고맙겠다는 답변을 주셨다. 덕분에 국내 뿐만 아니라 독일의 Edition Tintenfass사와도 연결되어 해외에도 전라북도 방언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3) 번역 작업 과정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사에서 나온 어린 왕자의 프랑스어 원문을 바탕으로 방언 어휘집과 필자가 임실, 남원, 전주 등에서 수집한 방언 자료를 참고하면서 번역했다. 번역을 하면서 적절한 방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조언을 구하기도 하면서 적절한 번역어를 채워넣고자 했다. 1차 번역 작업이 끝난 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의 명예교수이신 이승재 선생님께 감수를 요청드렸다. 이승재 선생님께서는 정확하지 않은 번역어를 지적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필자의 초고에 하나하나 소리의 길고 짧음을 표시하여 주셨다. 덕분에 더욱 생생한 방언으로 번역할 수 있었다. 기꺼이 감수를 맡아 주신 이승재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4) 작업 중 어려웠던 점
번역이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다. 직접 번역을 해 보니 이 말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단어와 단어를 일대 일로 대응시켜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매끄럽게 읽힐 수 있도록 문장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원문에는 없는 정보가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매 순간 고민했다. 소설의 화자가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났을 때 독자에게 자신의 놀라움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 보자.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어린 왕자가 화자에게 양을 그려 달라고 할 때 원문에서 어린 왕자는 'S'il vous pla?t... dessine-moi un mouton...'이라고 한다. 이는 표준어로 '부탁합니다... 저에게 양 한 마리를 그려 주세요...'와 같이 직역될 것이다. 이를 다시 방언으로 바꾸면 '부탁혀요... 저헌티 양 한 마리를 그려 주셔요...'가 되는데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문장이 자연스럽게 읽히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보완되어야 한다. 첫째로 부탁이나 동의를 구할 때 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삽입되는 말인 '좀'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둘째로 프랑스어 부정관사 'un'을 번역한 '한 마리'는 차라리 빠지는 것이 우리 말 문법으로는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는 이 문장을 '부탁 좀 허게요, 양 좀 그려 주셔요...'와 같이 번역하였다. 이처럼 원문에 없는 정보를 창작하여 넣거나 프랑스어의 언어 특성상 원문에는 들어가 있지만 번역에서는 빠져야 더 자연스러운 번역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또한 표준어와 달리 전라북도 방언에는 합의된 정서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표기 원칙을 정하는 일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한 예를 들어보자면 전라북도 방언에서는 어떤 단어 뒤에 [이]라는 소리가 올 때 그 앞의 소리가 변하는 일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표준어로는 '먹이다'라는 말을 [멕이다]라고 발음하는 식이다. 물론 중부 지방에서도 이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지만 전라북도 방언에서는 이것이 훨씬 빈번해서 때로는 '왕(王)이'와 같은 말에 대해 [왕이]라는 발음 뿐만 아니라 [왱이]라는 발음도 들을 수 있다. 이 때 [왱이]와 같은 발음을 표기에 반영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고민이 많았다. 이 경우에는 [왕이]와 [왱이]라는 발음이 모두 존재하는 것을 고려하여 두 표기를 모두 적었지만 결정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었다. 부족함이 많지만 최대한 일관된 표기를 하고자 노력하였다.

5)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여우가 어린 왕자와 헤어지면서 알려준 비밀을 어린 왕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로 꼽는다. 필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니 장미를 그릏게 특벨허게 맨들어 준 건 니가 니 장미헌티 들인 시간이여."
"넌 이거 까먹어 버림 못 쓴다잉. 니가 질들인 거엔 항시로 책임을 져야 되는 벱이여. 넌 니 장미를 책임져야 된다 그 말이여..."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만큼 이 번역본은 필자에게는 소중한 작업이다. 세상에 많은 어린 왕자 번역본이 있지만 수많은 장미 가운데 어린 왕자에게는 자기 장미가 특별하듯 필자에게는 이 번역본이 한 권의 특별한 책이 되었다.

6) 작가에게 사투리란?
필자에게 사투리란 가장 자연스럽게 배운 '내 말'인 동시에 되도록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쓰기를 바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 과정에서 표준어를 습득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말을 잃곤 한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도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주변의 압박이나 평가에 의해 의식적으로 자기 말씨를 바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필자는 대학에 진학하여 서울로 이주하면서 여러 지방 출신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주변 사람에게 지방 출신이냐는 말을 들으면 겸연쩍어하며 아직도 말투를 '고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필자는 사람이 태어나서 배우는 말은 모두 같은 가치를 지녔다고 믿는다다. 사투리는 표준어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사투리는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지켜온 말이자 역사이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것을 많이 잃고, 잊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 문화와 함께 발전해 온 사투리 역시 소중히 보전하고 지켜야 할 가치있는 보물이다.

7) 앞으로의 계획
지금 하고 있는 언어학 공부를 계속하여 연구자로 살아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소수 언어와 방언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8) 독자들에게 한마디
필자가 번역한 글을 독자들이 재미있게 봐 주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전라북도에도 독특한 방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흔히 전라북도 방언을 전라남도 방언과 충청남도 방언의 중간 쯤 되는 방언으로 여기는 일이 많다. 그러나 전라북도 방언은 엄연히 이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는 독특한 방언이다. 물론 전라북도가 지리적으로 충청남도와 전라남도 사이에 위치해 있기에 여기서 쓰이는 방언과 많은 특징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의 번역본을 읽은 충남 방언 사용자와 전남 방언 사용자는 이것이 자신들의 방언과 완전히 같지 않다는 필자의 주장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필자의 번역을 보고 방언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 직접 방언으로 창작 활동을 하여 방언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찬 일은 없을 것이다.

저자소개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시험에서 실패하고 미술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1921년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면허를 땄고, 1926년 라테코에르에 들어가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우편비행을 담당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는 시험비행사, 에어프랑스의 홍보담당, <파리수아르 Paris-Soir> 기자로 일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시절 모습은 『어린왕자』의 주인공과 너무나 흡사하다. 굽슬굽슬한 갈색 머리털을 가진 소년 생텍쥐페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소한 일들을 경이와 찬탄으로 바라보았고, 유난히 법석을 떨고 잔꾀가 많은 반면, 항상 생기가 넘치고 영리했다. 감성이 풍부하고 미지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그는 1917년 6월, 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합격한 후 파리로 가서 보쉬에 대학에 들어가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였으나 구술 시험에서 떨어져 파리 예술 대학에 들어가 15개월간 건축학을 공부했다. 『어린 왕자』에 생텍쥐베리가 직접 삽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공부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 민간항공 회사에 각각 근무하다가 에르 프랑스의 전신인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하여 『야간 비행』의 주인공인 리비에르로 알려진 디디에도라를 알게 되고 다카르-카사블랑카 사이의 우편 비행을 하면서 밤에는 『남방 우편기』를 집필하였다. 1929년 아르헨티나의 항공사에 임명되면서 조종사로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야간 비행』를 집필했다.

1939년 육군 정찰기 조종사가 되었으며, 1940년 2차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자 미국으로 탈출했다. 1943년 연합군에 합류해 북아프리카 공군에 들어간 후 1944년 7월 31일 프랑스 남부 해안을 정찰비행하다 행방불명되었다. 2000년, 한 잠수부가 프랑스 마르세유 근해에서 생텍쥐페리와 함께 실종됐던 정찰기 P38의 잔해를 발견했고 뒤이은 2004년 프랑스 수중탐사팀이 항공기 잔해를 추가 발견했다.

<남방우편 Courrier-Sud>(1929), <야간비행 Vol de nuit>(1931), <인간의 대지 Terre des hommes>(1939), <전투조종사 Pilote de Guerre>(1942),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a un otage>(1943), <어린왕자 Le Petit Prince>(194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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